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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뉴스

최우선변제금 노린 ‘위장임차인’까지 등장... 전세 피해자 두번 운다.

by 6688 2023. 5. 4.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있는 임대인이 임차권 등기가 설정됐거나 압류가 걸린 주택에 ‘위장 임차인’을 들인 사례가 경향신문 취재 결과 확인됐다.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때 소액 임차인의 최우선변제금이 가장 먼저 배당되는 점을 노린 것이다.

특히 위장 임차인으로 인한 ‘2차 피해’는 다가구주택 거주자 등 정부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경·공매를 통한 보증금 회수만 제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안이한 대책이 진화하는 수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다수 발생한 서울 강서구 빌라 밀집 지역. 한수빈 기자

 

실소유자 행세하던 ‘건축주’ 가족이 세입자로…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서울시립대 후문에 위치한 한 다가구 주택에선 20~30대 청년 9명이 3년 넘게 보증금 미반환 소송을 벌이고 있다.

2017년 건축주 김씨는 임대인 이씨 명의의 토지에 건물을 지으면, 이씨가 토지·건물 소유권을 이전해주기로 부동산 매매계약을 맺었다. 잔금은 세입자들에게 받은 전세보증금으로 치르기로 했다. 건축주 김씨는 이듬해 세입자들이 입주한 직후 “집에 문제가 생기면 임대인이 아니라 나에게 연락하라”며 ‘실소유주’임을 자처했다.

그러던 김씨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시세 차익을 보기 어려워지자 태도를 바꿨다. “나도 건축대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라며 임대인 이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2020년 6월 주택에 가압류가 걸리고 경매에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자 자신의 부인과 아들·지인 등 4명을 이 건물 세입자로 들였다.

경향신문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경매에서 최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는 소액 임차인이다. 실거주한 정황은 없고, 관리비만 김씨가 납부 중이다. 경매 배당요구서도 모두 김씨가 제출했다. 임차인의 계약서는 임대인 이씨가 아닌 제3자 필체로 작성됐고, 공인중개업소 정보도 누락돼있었다.

 

건축주 김씨의 아내가 주택 경매 개시 직전인 2020년 7월 임대인 이모씨와 맺은 임대차계약서(위)는 임대인 이씨의 기존 필체(아래)와 일치하지 않는다. 임대차 계약서는 임대인과 임차인 정보 모두 동일한 사람이 작성했고, 이씨의 기존 인감도장과도 불일치해 비정상 계약이 의심된다. 피해자 제공.

 

 

9명의 피해자들은 이를 근거로 김씨가 ‘위장임차인’을 심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김씨의 가족·지인이 받게 될 최우선변제금은 총 9300만원이다. 김씨는 임대인 이씨를 상대로 한 유치권소송에서도 승소해 건물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게 됐지만, 보증금 등 채권 반환 의무를 피하기 위해 소유권 이전 절차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이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피해자들에게 돌아간다. 이 다가구 주택은 최근 10억5999만원에 낙찰됐다. 원래대로라면 선순위 채권자인 A금융사가 약 6억4000만원을 배당받고도 피해자 9명 중 5명이 전액 변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위장 임차인들의 최우선변제금이 추가되면, 9명 전원이 전액 변제를 받을 수 없다.

피해자 최모씨(29)는 “실소유주를 자처하던 건축주 가족·지인이 경매 개시 직전 집중적으로 전입을 했는데, 법원은 이들이 ‘위장임차인’임을 피해자보고 증명하라고 한다”며 “피해자들끼리 힘을 모아 증거를 수집하고 있지만 배당일이 얼마 안남아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정부와 국회의 실효성 있는 피해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임차권 등기 친 집에 또 월세 계약?

인천 미추홀구의 다세대주택에 거주했던 강모씨(33) 부부는 보증금 8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하자 임차권등기를 설정하고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올해 초 자신들이 임차권등기를 설정해둔 집에 누군가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의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급하게 새 세입자를 만나보니 ‘나는 최우선변제금만 받으면 되니 더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명의 상 집주인이었던 A씨는 “나는 계약을 맺은 적이 없고 통장과 인감증명서도 실소유주인 장인B씨가 갖고 있다”며 “나 역시 장인의 협박과 강요로 명의를 대여해 준 피해자”라고 했다.

강씨 부부는 그제서야 이것이 ‘전세사기’임을 직감했다. 강씨는 “임차권등기가 설정된 집은 전세대출이 안나오니 다른 층에 살던 세입자를 이사시키고, 등기가 깨끗한 그 집을 담보로 또 대출을 받는 수법을 쓴 것”이라고 했다.

 

강씨 부부는 명의상 집주인이었던 A씨의 연락을 받고 자신들이 ‘전세사기’에 당했음을 알게 됐다. 임차권등기를 설정하고 전출한 집에는 또다른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피해자 제공

 

 

문제는 이로 인해 강씨 부부의 피해 구제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정부가 추진중인 ‘전세피해 특별법’ 통과 전(2일 현재)기준으로, 저리대출 등의 피해지원을 받으려면 ‘임차권등기 설정’과 ‘기존 주택 실거주(점유)’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강씨 부부의 경우 임차권등기를 설정한 주택에 다른 세입자가 전입을 한 상태라 실거주가 불가능하다.

B씨가 새로운 세입자에게 받은 보증금과 월세를 추심할 수도 없다. 강씨는 “전세보증금반환소송에서 승소해 임대인 A씨 통장을 압류한 상태지만 실소유주 명의가 아닌데다, 다른 통장을 만들면 그만인 구조”라며 “임차권등기부터 민·형사 소송까지 할수 있는 것은 다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만약 강씨 부부가 경매로 주택을 ‘셀프낙찰’받는다면 새 세입자에게 최우선변제금만큼의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고, 낙찰을 포기하면 최우선변제금 2700만원만 건지게 된다.

B씨는최근까지도 상황을 모르는 피해자들과 보증금을 올려 연장 계약을 하거나 신규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씨가 보유한 주택은 약 100채, 피해자는 최소 100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인천 계양경찰서는 3일 “수개월 전부터 B씨에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출 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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